이런 맥락에서 요한 하리는 사회적인 개입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다른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여 유지할 수 있게 도와야 우울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죠.
프로이트는일하고 사랑하는 능력이 정신건강의 중요한 지표라고 보았습니다.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에 따라 사회에 유익을 더하는 어떤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과의 유대감이나 사회적 소속감을 경험할 수 있어야 정신적인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요한 하리가 우울증의 근본 치료로서 사회적 개입을 중시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외로움은 우울증 치료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일 것입니다. [감정 어휘]의 저자 유선경은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이라는 뜻을 갖는 외로움은 소외감과 고립감을 거쳐 무력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무력감은 우울증을 지닌 환자가 흔하게 경험하는 느낌이기도 하죠.
요한 하리는 외로움을 치료하기 위한 사회적 처방으로서의 정원 가꾸기 모임을 설명합니다. 다같이 정원을 가꾸는 것은 야외에서 신체적 활동을 늘리고,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느낌을 갖게 함으로써 우울 감소에 도움이 됩니다. 더욱 중요하게는, 서로가 서로의 안녕에 관심을 갖는 끈끈한 유대가 형성됨으로써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됨을 언급합니다.많은 연구 결과가 이를 지지합니다.
심지어 낯선 사람의 손을 잡는 것이 가까운 사람의 손을 잡는 것만큼이나 통증 완화에 효과적임을 확인한연구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자체가 통증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및 감정 조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깊은 외로움과 함께 우울증을 경험하는 것은 "삶에서 중요한 것을 소홀히 하도록 설계된 (물질주의/소비주의) 기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우울증을 단순히 생물학적 불균형이나 개인 의지의 문제로 보지 말고,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물질주의 기계에 맞서 변화를 실천하는 계기로 삼으라는 조언입니다. 특히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 우울증을 치료하는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고 보는 듯합니다. 우울증을 생물학적이거나 개인적인 문제로 보기보다 관계의 질병(relational disease)으로 정의한테리 리얼의 언급과도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카렌 호나이는 1885년에 독일에서 태어나서 1952년 뉴욕에서 생을 마친 정신분석가입니다. 에리히 프롬이나 알프레드 아들러와 교류하며 후대 심리치료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도 합니다.
위 팟캐스트 에피소드에서 카렌 호나이의 저작 중 Neurosis and Human Growth 내용을 다룹니다. 이 에피소드에서 소개되는 책의 내용을 일부 가져오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건강한 성장의 힘을 지니고 태어납니다. 하지만 생애 초기의 좋지 않은 환경이 이러한 힘을 저해하게 될 때 이후 한 사람의 삶에서 지속되는 근본적인 불안이 야기되고, 이 불안에 대처하려는 무의식적인 시도로서 완벽하고 이상화된 자기와 스스로를 동일시하며 자존감을 유지하려는 몇몇 성격 특성이 발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격 특성을 아우르는 용어가 신경증(Neurosis)입니다.
신경증은 크게 두 가지 근본 특성을 지닙니다. 첫째, 강박적 특성입니다. 자발성을 갖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한다'와 같은 당위에 의해 경직되게 움직이는 것으로 봅니다. 강박의 내용은 대체로 다른 누구보다도 뛰어나고자 하는 우월감 추구와 관련 있습니다.
둘째, 왜곡된 상상을 하는 특성입니다. 상상력 자체는 인간 정신 기능의 중요한 특성이지만, 우월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한계까지 왜곡할 때 문제가 됩니다.
신경증은 이처럼 현실적 한계를 무시하는 강박적 우월감 추구에 연관되며, 호나이가 신경증적 주장(Neurotic Claims)이라고 부른 태도로 표출됩니다. 어린 아이들은 누구나 자기중심성을 지닙니다. 이를 테면, 놀이공원을 가야 하는 날에는 비가 내려서는 안 됩니다. 우주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인이 이런 아이와도 같은 자기중심성을 지닐 경우 일터나 대인관계에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내 필요/욕구/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을 악한 것으로 간주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노력하지 않고도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망상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것이 호나이의 생각입니다.
신경증적 주장은 신경증의 근본 특성에 내재된 당위의 폭정(The Tyranny of the "Should")을 통해 그 기세를 더욱 떨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서로 상충하는 두 당위가 한 개인의 내면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어떤 상황에서도 타인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당위와 다른 사람은 내게 뭘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당위가 충돌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내게 사소한 무언가를 부탁하면, 나는 그 사람에게 친절하고자 했으나 그 사람이 내게 무리한 부탁을 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화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내게 뭘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당위가 있음에도,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자기 체면을 살리는 내적 타협을 감행한 것이죠. 물론 무의식적인 과정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호나이가 말하는 신경증이 꼭 병적 자기애와 같은 양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경증적인 우월감과 자부심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호나이는 자기비하와 자기경멸을 중요하게 다룹니다. 실상 호나이의 신경증 이론에서 보면 병적인 자기애와 자기비하/자기경멸은 동전의 이면과 같습니다.
우월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평가절하하는 방식으로 현실을 어느 정도 왜곡할 수 있겠지만, 상상과 현실이 등가교환되는 정신병 수준에 이르지 않고서야 현실적인 제약에 완전히 눈을 감을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이상적인 자기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한 미션이기도 하기에 신경증적 자부심의 상처는 불가피합니다.
이때이상적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자기비하/자기경멸의 방식이 동원됩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비판하는 것보다 자기채찍질이 덜 아프기 때문입니다. 이상화된 자기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면서 자기비하하는 것은 이상화된 자기를 보호하는 은밀한 방식일 수 있습니다. 자기의 한계와 취약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복잡한 방어를 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오직 이상화된 자기를 가진 사람만이 거기 부합하지 못하는 자신의 단면을 셀프 정죄하고 채찍질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의 비판이라는 더 치명적인 공격으로부터 이상화된 자기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호나이는 정신분석을 통해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작업을 중시한 것 같습니다. 이를 통해 자기 내면의 갈등을 이해하고, 경직된 자기에서 벗어나 신경증을 완화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점에서 프로이트의 유산을 물려 받았습니다. 하지만 분석가와 내담자 사이의 관계를 더욱 중시하고, 이 관계 안에서 적절한 치료 환경이 조성될 경우 내담자 안의 건강한 성장 동력이 발휘된다고 본 점은 프로이트와 차별되는 지점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