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실 때 "제가 어떤 병이에요?", "이게 무슨 장애인가요?"라고 물으시곤 합니다. 이런 질문은 자연스럽습니다. 우리는 의사를 만나면 진단명을 듣고, 그에 맞는 치료를 받는 것에 익숙하니까요.
하지만 심리치료는 조금 다릅니다. 오늘은 왜 심리치료에서 개인이 지닌 복잡성에 특화된 접근이 중요한지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진단의 한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우울증, 불안장애, 경계선 성격장애와 같은 진단명들은 DSM(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이나 ICD(국제질병분류)에서 정의한 것들입니다. 이러한 진단 체계는 증상들을 모아 하나의 '질병'으로 분류합니다.
그러나 이 접근법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습니다:
개인의 복잡성을 단순화합니다: 진단명은 복잡한 사람을 단순한 라벨로 축소시킵니다. 같은 우울증 진단을 받은 두 사람의 경험과 어려움은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치료의 유연성을 제한합니다: 진단에 따라 정해진 치료법만 적용하면, 그 사람의 고유한 상황과 필요에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계선 성격장애'라는 진단을 받으면 DBT(변증법적 행동치료)가 처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다른 접근법이 더 효과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생물학적 근거가 불충분합니다: 정신장애에 대한 특정 유전자나 분자 표지자를 찾으려는 시도는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정신건강 문제는 단일 원인이 아닌 복잡한 요인들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됩니다.
일상의 중요한 문제를 놓칠 수 있습니다: 낮은 자존감이나 외로움과 같은 심각한 고통은 특정 진단명이 없어도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네트워크로서의 심리적 문제들
진단명 대신, 최근의 심리치료 접근법은 개인의 문제를 '네트워크'로 바라봅니다. 이 네트워크는 아래와 같은 다양한 '노드(node)'로 구성됩니다:
생각: "나는 충분히 좋은 사람이 아니야"
감정: 외로움, 슬픔, 불안
행동: 반추(같은 생각을 계속 되풀이함), 회피
경험: 과거의 학대나 트라우마
이 노드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 강도는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나는 누구의 친구도 될 수 없어"라는 생각과 강하게 연결될 수 있습니다.
효과적인 심리치료는 이 네트워크를 이해하고, 어떤 노드를 타겟팅하는 것이 전체 시스템을 건강한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심리치료의 '예술'입니다.
과정 기반 심리치료(PBT)의 새로운 접근
과정 기반 심리치료(Process-Based Therapy, PBT)는 진단명을 넘어서는 네트워크 접근을 이론적 토대로 합니다.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개인 중심 접근: 집단이 아닌, 치료실에 앉아 있는 그 특정 개인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이를 위해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을 활용합니다.
변화의 핵심 원리 적용:
새로운 변화 도입(Variation): 새로운 사고, 감정, 행동 방식 시도하기
효과적인 것 선택(Selection): 실제로 도움이 되는 방식 선택하기
지속적 유지(Retention): 긍정적 변화를 일상에 통합하기
효과적인 치료 요소 활용: 노출, 인지 재구조화, 마음챙김 등 검증된 치료 기법을 개인의 네트워크에 맞게 적용합니다.
데이터 기반 접근: 정기적인 평가를 통해 치료 효과를 모니터링하고 필요에 따라 접근법을 조정합니다.
개인의 목표와 가치 중심: 단순히 증상 감소가 아닌, 그 사람이 가치 있게 여기는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실제 적용 예시
혼자서 술을 많이 마시는 한 내담자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전통적인 접근에서는 '알코올 사용 장애'라는 진단을 내리고 표준화된 프로토콜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프로세스 기반 접근에서는:
그 사람의 음주 네트워크를 살펴봅니다: 음주는 외로움(감정),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다"(생각), 사회적 고립(행동)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핵심 노드를 식별합니다: 외로움이 가장 중심적인 노드일 수 있습니다.
맞춤형 개입을 설계합니다: 사회적 연결을 증가시키는 활동, 자기 자비 연습, 가치 명확화 등을 통해 외로움과 낮은 자존감을 다루는 데 초점을 맞출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