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각제 보조 심리치료 슬쩍 들춰보기
- 다섯 달 전에 유튜브에 업로드된 호주 국영 방송의 환각제 보조 치료 관련 다큐입니다.
- 이 영상의 주된 결론부터 얘기하면, 심리치료의 과정에서 환각제가 사용될 경우 PTSD나 치료해도 잘 낫지 않는 치료저항성 우울증(Treatment-resistant depression)에서 눈에 띄는 치료 효과를 낳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심리치료만 했을 때는 전체 환자 중 1/3이 증상 완화를 보였다면 심리치료 과정의 일부로서 환각제를 사용하는 상담 회기를 포함했을 때는 2/3가 증상 완화를 보였다는 것입니다.
- 호주는 세계 최초로 치료 목적의 환각제 사용을 작년 7월부터 합법화했습니다. PTSD에 MDMA의 사용을, 우울증에 psilocybin의 사용을 각각 허가한 것입니다. 미국도 2024년 안에 PTSD 치료에 대한 MDMA의 사용을 합법화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미 2021년 봄에 중증 PTSD 환자를 대상으로 한 MDMA 보조 치료의 효능이 입증된 바 있습니다. 이 연구가 3상 연구였으니 FDA 통과는 시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아래 논문 초록의 결론 부분을 발췌해 옵니다.
- "MDMA 보조 요법은 중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에게 매우 효과적이며, 동반 질환이 있는 환자에게도 안전하고 내약성(약물의 명백한 부작용을 환자가 견딜 수 있는 정도)이 우수합니다. 우리는 MDMA 보조 요법이 신속한 임상 평가가 필요한 잠재적으로 획기적인 치료법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 획기적인 치료법이라고 말하는 데서 연구자들의 가슴 벅참이 느껴지는 것은 저뿐만은 아니겠죠. 약물치료나 심리치료를 받았으나 효과를 경험하지 못한 정신장애 환자에게도 이러한 소식이 희망으로 느껴질 것 같습니다.
- 하지만 FDA 승인이 난다고 해도 임상 현장에서 실제로 사용되기까지 거쳐야 할 난관이 많아 보입니다. 가령, 누가 MDMA를 처방할 수 있고 어떤 약국이나 시설에서 약을 조제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법이 마련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 또한, 존스 홉킨스에서 중독 치료에 psilocybin의 활용을 연구하는 Albert Garcia-Romeu에 따르면, 환각제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음에도 이미 미디어에서 그런 식의 자극적인 제목을 선정하여 대중을 호도하는 면이 있음을 지적합니다.
- ABC News 영상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치료자도 축약된(truncated) 버전의 심리치료 과정에서 환각제를 복용하여 그 효능을 직접 경험해 보고, 그 이후 환자를 치료한다는 점입니다. 즉, 환자를 안전하게 치료하기 위해 심리치료 과정을 잘 구조화하고, 발생 가능한 위기 상황을 미연해 방지하고자 대비책을 잘 세워 놓으려 애쓰는 듯합니다.
- 무엇보다, 환각제 사용은 공인된 치료자에 의해 심리치료의 일부로서 통합돼야 치료 효과가 있지 마법의 약 같은 것이 아니며, 불법적으로 치료에 사용될 시 위험성이 크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 ABC News 영상이나 미국 CBS 영상에서 환각제 보조 심리치료를 경험한 사람들의 생생한 언급도 들어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콜로라도 같은 일부 주는 치료 목적의 환각제 사용이 합법입니다.) 이들의 얘기에서 일관되는 부분은 환각제 보조 심리치료가 고통스러운 기억이나 감정을 해리시키지 않고 자기 안에 통합시킬 수 있게 촉진함으로써, 자기 인식을 변화시키고 가까운 사람과의 유대를 강화한다는 점입니다.
- 임상 현장에서 일하는 저로서는 한국에서 이러한 흐름이 어떻게 수용될지 무척 궁금합니다. 특히 PTSD나 우울증뿐만 아니라 다른 정신장애에 환각제 보조 심리치료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관련 내용에 대해 더 공부해 보고 싶은 분은 저널리스트 마이클 폴란이 2018년에 출판한 마음을 바꾸는 방법을 읽어보면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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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을 우울증과 함께 살아 온 어느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
- EBS 위대한 수업에 출연해서 우울을 경험하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던 린다 개스크가 출연한 21년도 팟캐스트 에피소드입니다.
- 린다 개스크는 정신과 의사이면서 성인이 된 이후 평생 우울증을 경험해 온 환자이기도 합니다. 약물치료와 심리치료(정신역동 심리치료 및 CBT)를 받았고, 나이가 든 이후에는 우울증뿐만 아니라 신체 질환까지 심해져서 이중고를 경험해 왔다고 이야기합니다.
- 그녀에게 우울은 불안으로 경험되기도 합니다. 한낮의 우울로 유명한 앤드루 솔로몬의 말처럼, 우울과 불안은 이란성 쌍둥이 같아서 공존할 때가 많습니다. 위 에피소드에서 개스크는 불안이 커질 때 일을 더 오래 함으로써 그 불안을 해소하려 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는 인생의 균형을 잃게 합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렇고, 신체적 건강에서도 그렇습니다. 관계와 육체가 건강하지 못할 때 우울과 불안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 개스크의 남편은 그녀 삶의 균형이 어긋나 있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그녀가 상황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합니다. 우울이 심하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가까운 사람의 의견과 도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 하지만 누구에게나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이 중요합니다. 도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통제감을 잠시 내려놓는다는 의미이기에 힘든 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 당신의 특별한 우울에서 개스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에게 통제감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 통제력을 유지하려는 욕구 때문에,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하지 못할 수도 있다. 도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찌 보면 자기 삶의 통제권을 남에게 넘기는 행위니까. 항복하고 자유를 잃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겁먹는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 우울한 상황에서 통제감을 내려놓고 타인의 도움을 구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개스크의 말에 공감이 됩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자각했다 하더라도 도움 받고 싶은 마음과 취약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양가감정(영상에서 49분부터 참고)이 드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이에, 두렵고 주저하게 되는 마음 자체를 누군가에게 터놓을 수 있다면 일단 그것 자체로 된 것 아닐까 싶습니다. 거기까지 가는 데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겁니다. 도움을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그 이후에 결정해도 좋을 것입니다.
- 개스크는 심리치료나 정신과에서의 약물치료가 아니라 하더라도, 우울이 심한 사람이 그 자신에게 도움이 될 법한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수용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단지 그 모든 노력이 통하지 않을 때, 자신을 비롯한 치료자들이 항상 같은 자리에서 도움을 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한 사람의 자율성과 통제감을 중시하는 이런 모습은 아마도 그 자신이 환자로서 다른 정신과 의사나 심리치료자 앞에 앉아 보았기에 할 수 있는 얘기라고 생각했습니다.
- 특히 약물치료가 때로는 효과를 보이지 않거나 부작용이 심할 수 있다는 것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몸을 통해 체감했기에, 사람들이 약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이해가 된다고 말합니다. 약물치료에 문제점이 있을 수 있으나 증상이 심각할 때는 심리치료에 더해 약물치료를 받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고, 자신에게 맞는 약물과 용량을 찾는 데 긴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합니다.
- 다만 우울이 아직 학업, 일, 대인관계 등 일상생활 기능을 현저히 저해하지 않을 때는 생활 방식의 개선을 통해 삶의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즉, 수면 스케줄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술은 멀리하며, 운동을 하거나 바깥 공기를 마시며 걷는 것과 같은 행동들이 우울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 다음과 같은 행동 양상 중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이 많을수록 다른 사람이나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우울을 경험하는 사람은 "집에 틀어박혀 있거나 사회 활동이 꺼려지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되고, 성과나 일이 기대한 바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끼며, 평소보다 많이 자거나 잠들기가 힘들고, 외모에 신경 쓰지 않게 됩니다." 개스크는 위대한 수업에서 시청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마지막으로 전합니다. "도움을 청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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