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적 글쓰기는 어떻게 괴로움을 완화할까
- 21회차 뉴스레터에서는 표현적 글쓰기가 외상 경험을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게 도움으로써 외상과 관련된 파편화된 기억을 자기서사의 일부로 통합할 가능성을 높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 페니베이커가 쓴 표현적 글쓰기를 직접 읽어보니 위 내용이 더욱 구체적으로 이해가 되더군요. 총 4일에 걸쳐 진행되는 표현적 글쓰기 프로토콜 중 첫째 날의 프로토콜 일부(161쪽)를 옮겨 옵니다.
- "오늘은 단지 그 사건 자체에 대해서, 그 사건 당시 당신의 감정에 대해서, 그리고 지금 당신이 그 사건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만 글로 쓰는 것이 유익할 수도 있다. 이 사건에 대해 글을 쓸 때 당신 삶의 다른 부분과 연결지어 글쓰기를 시작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그 사건은 당신의 어린 시절과 부모님, 그리고 가까운 가족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그 사건은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 가장 두려워하는, 또는 가장 분노하고 있는 사람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이 감정적인 격변이 당신의 현재 생활, 친구와 가족, 일, 그리고 인생에서의 당신의 현재 위치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무엇보다도 이런 사건은 당신이 과거에 누구였는지, 당신이 미래에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당신은 지금 누구인가에 대해 어떤 연관이 있는가?"
- 1) 외상 경험과 관련된 팩트, 2) 당시 느꼈던 감정과 현재 감정, 3) 과거-현재-미래 나와의 관련성을 찾는 것이 핵심입니다. 억압되거나 해리된 기억과 감정이 불쑥불쑥 나를 찾아와 괴롭게 만드는 것은 그 기억과 감정이 내 안에 연결고리를 갖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 노션이나 에버노트, 옵시디언 같은 생산성 툴을 하나쯤은 쓰고 계실 텐데요. 표현적 글쓰기는, 이를 테면 외따로 떨어져 있던 노트에 링크를 걸어서 자기서사라는 전체 노트 시스템 안에 상대적 위치를 부여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위치가 부여되면 조절이 가능합니다. 즉, 침습적 외상 기억이나 예기치 않은 강한 감정 경험의 빈도가 줄어듭니다.
- 실제로 우리가 행하는 것은 글을 쓰거나 키보드를 타이핑하는 것이지만, 이 행위를 통해 약화되었거나 끊어졌던 뇌의 네트워킹이 다시 활발해짐으로써 신체적/정신적 이득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가설을 팟캐스트 호스트인 Huberman이 언급합니다.
- 네, 표현적 글쓰기가 어떻게 그 효과를 발휘하는지 기제를 명확히 밝힌 연구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Huberman은 외상 경험이 전전두엽 피질의 활성화를 감소시키고 피질하 구조의 활성화를 증가시킴으로써 정서적 반응과 신체 건강 모두에 장기적으로 유해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데 반해, 외상 경험을 다양한 각도에서 반복적으로 재기술해 보는 표현적 글쓰기를 하면 전전두엽 피질의 활동성이 지속적으로 증가되고 이를 통해 자기서사의 통합성(coherence of the narrative)도 증가하게 된다는 논리를 펼칩니다.
- Huberman은 전전두엽 피질에 대한 비침습적 뇌 자극이 부정직함이 발생하기 쉬운 게임에서 참가자의 정직성을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표현적 글쓰기에서 정직하게 자신의 내외적 경험을 기술하는 것이 전전두엽 피질의 활동성과 신경 가소성을 증가시켜 외상 경험을 자기서사로 통합할 가능성을 촉진함을 언급합니다. 그에 더해, 자율신경계의 활성화를 줄이면서 면역체계 기능도 향상되는 것일 수 있음을 이야기하네요. 실제로 표현적 글쓰기는 섬유근육통과 같은 만성 통증에도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효과가 있음을 입증한 바 있습니다.
- 정리하면, 표현적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반복적으로 성찰하고 진실하게 표현하는 과정에서, 전전두엽 피질의 활성화가 촉발됩니다. 이는 기억 재구성, 정서 조절 능력 향상, 자기 이해 증진 등으로 이어져, 결국 외상 경험에 대한 통합적 자기서사 형성을 돕게 됩니다. 나아가 이러한 전전두엽 피질 활성화는 자율신경계와 면역체계의 조절 기능 향상으로 이어지며 만성 통증을 완화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 이번 뉴스레터를 준비하면서 저도 표현적 글쓰기를 시도해 보았습니다. 연속 4일 글쓰기는 무리 같아서, 일주일에 한 번씩 15~20분 정도 글을 쓰려고 마음 먹었고 지난 주에 한 번 글을 썼습니다. 자세한 방법은 표현적 글쓰기에 나와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고,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은 제가 작성한 이 글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끝으로 둘째 날부터 넷째 날까지 같은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이 가능하지만, "반드시 그것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다른 차원에서 탐구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1]: "외상 사건에 대한 노출, 침습, 회피, 과각성 등이 PTSD 진단을 위한 DSM-IV 기준입니다. 흥미롭게도 PTSD 진단을 받아야만 표본에 포함할 수 있는 연구들은 효과 크기가 중간 정도였고, PTSD 진단이 필요하지 않은 표본으로 진행된 연구들은 효과 크기가 작거나 중간 정도였습니다." - A Meta-Analysis of Expressive Writing on Posttraumatic Stress, Posttraumatic Growth, and Quality of Life - Jeffrey M. Pavlacic, Erin M. Buchanan, Nicholas P. Maxwell, Tabetha G. Hopke, Stefan E. Schulenberg, 2019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