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우울증이 맞습니다" - 성공의 절정에서 들은 뜻밖의 진단
뉴욕 맨해튼 한복판, 최고급 오피스에서 환자들을 만나는 정신과 의사. 뉴욕대학교에서 교수로 가르치고, 자신만의 연구소까지 운영하는 완벽한 커리어우먼. 남들이 보기엔 부러울 게 없는 삶을 살던 주디스 조셉 박사에게 2020년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코로나19로 절망에 빠진 병원 직원들 앞에서 "희망을 잃지 마세요, 치유는 가능합니다"라고 강연하던 중이었죠. 청중들의 간절한 눈빛을 보며 위로의 말을 건네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어요. 내가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고 있지만, 정작 나는 치유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걸요."
이상하지 않나요? 매일 환자를 치료하고, 연구소를 운영하고, 강의까지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이 어떻게 우울할 수 있을까요? 우울하면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아닌가요?
성공 중독자들의 비밀: 멈추면 죽을 것 같은 이유
조셉 박사가 발견한 건 뜻밖이었습니다. 세상에는 '고기능 우울증'이라는 게 있다는 거였어요.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내면은 텅 비어있는 사람들. 바쁘게 살수록, 더 많이 성취할수록 오히려 기쁨을 잃어가는 사람들 말이죠.
"우리는 바쁨으로 대처해요. 트라우마와 고통을 피해 달리려고 하죠.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어요. 가만히 있으면 공허함을 느끼거든요."
실제로 그녀의 클리닉을 찾는 환자들은 전형적인 '무너진'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대부분 고수입 직업을 가진,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어요. 하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무쾌감증 - 한때 기쁨을 주던 것들에서 더 이상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증상.
"의사에게 가서 '기쁨을 못 느끼겠어요'라고 하면, 의사는 '그래도 일은 하고 있죠? 사람들은 만나고 있고요?'라고 물어봐요. '네'라고 답하면 '무너지면 그때 오세요'라고 해요. 하지만 무쾌감증은 이미 위기예요."
조셉 박사의 책에는 자가진단 퀴즈가 있어요. 다음 중 몇 개나 해당되시나요?
- 화장실 가는 것도 미룰 정도로 바쁘게 산다
- 점심시간에도 책상에서 일하며 밥을 먹는다
- 가족과 함께 있어도 마음은 일생각뿐이다
- 잠들기 전 내일 할 일을 생각하며 뒤척인다
- 휴가를 가도 진짜 쉬지 못한다
- "내가 안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 혼자 있으면 불안하고 초조하다
"실제로 고위 임원 여성들 대상으로 강연할 때 '화장실 가고 싶은데 참고 일한 적 있나요?'라고 물으니까 다들 웃더라고요. 공통된 경험이었던 거죠."
가장 충격적인 발견은 이거였어요. 고기능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에게는 마조히즘적 나르시시즘이라는 특징이 있다는 것.
나르시시스트라고 하면 보통 자기 자랑하고 거만한 사람을 떠올리죠? 하지만 마조히즘적 나르시시스트는 정반대예요.
"나만이 제대로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지만(나르시시즘), 동시에 자신을 혹사시키고 쾌락을 거부해요(마조히즘).
조셉 박사 자신이 이런 경험을 했어요. 컬럼비아대학에서 무료 치료를 받을 기회가 있었는데도 "나는 괜찮아, 이런 건 정말 아픈 사람들이나 받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매번 약속에 늦게 갔거든요.
"당신의 마조히즘은 전염성이 있어요. 자신을 충분히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이런 좋은 기회를 대충 대하고 늦게 와요. 그러면 다음 환자도 늦게 시작하게 되죠. 이게 바로 마조히즘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에요. 자기 파괴적이면서도 이기적이죠."
즉,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태도가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준다는 거였어요. 이런 패턴이 직장에서도 반복되죠. 본인이 과로하면 팀원들도 똑같이 과로하게 되고, 본인이 마조히즘적으로 행동하면 그 문화가 전체에 퍼진다는 겁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뇌과학이 알려주는 진실
여기서 궁금한 게 생기죠. 왜 성공한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게 될까요?
조셉 박사는 이게 결국 처리되지 않은 트라우마의 결과라고 설명해요.
여기서 말하는 트라우마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큰 사고나 사건만을 의미하지 않아요. 조셉 박사는 "트라우마란 정서적으로, 심리적으로 중요해서 자신을 보는 방식과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바꾸어놓은 모든 것"이라고 정의해요.
- 부모의 이혼 (흔한 일이지만 아이에게는 "내가 뭔가 잘못했나?" 하는 죄책감을 남길 수 있음)
- 출산 트라우마 ("모든 엄마가 겪는 일인데 왜 나만 힘들어하지?" 하며 혼자 삭히는 경우)
- 어릴 때 "넌 충분하지 않아"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받은 경험
-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며 "절대 부족함을 느끼면 안 돼"라는 무의식적 압박
이런 경험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우리 뇌는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한 방법을 학습하게 돼요. 고기능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의 경우, 그 방법이 바로 '바쁨'인 거예요. "바쁘면 그 아픈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되니까요."
실제로 뇌과학 연구 결과는 더욱 흥미로워요. 우울증이 단순히 세로토닌 부족 때문이라는 기존 이론이 틀렸다는 게 밝혀졌거든요.
"만약 신경전달물질 부족이 전부라면, 모든 사람에게 약만 주면 행복해질 거예요. 하지만 그렇지 않죠."
실제로는 뇌 영역 간의 연결성 부족이 문제였어요. fMRI로 뇌를 찍어보면, 우울한 사람의 뇌는 건강한 사람의 뇌보다 각 영역이 서로 잘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거죠.
그런데 신기한 건, 명상이나 마음챙김 같은 활동을 하면 뇌의 연결성이 다시 좋아진다는 점이에요. 마치 우울증 치료를 받은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고 해요. 이는 올바른 방법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 뇌를 치유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이기도 하죠.
5V 법칙: 기쁨을 되찾는 구체적 방법
조셉 박사는 실용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요. 바로 5V 법칙입니다.
1. Validation (인정하기) "감정을 인정하고 이름 붙이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시작돼요. 어두운 방에서 큰 소리가 났을 때, 불을 켜서 그냥 꽃병이 깨진 거라는 걸 알면 안심되는 것처럼요."
2. Venting (건강한 배출) 무작정 푸념하는 게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표현하기. 예를 들어:
-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같이 생각해줄래?"
- "내 감정을 정리하고 싶은데 들어줄 수 있어?"
- "피드백이 필요해서 그러는데..."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고,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냥 감정을 쏟아내기만 하면 '불에 기름 붓기'가 되어 더 기분 나빠져요."
3. Values (가치 재발견)
어릴 때 정말 좋아했던 것들 떠올리기. "독서가 상을 받기 위한 수단이 되기 전에, 순수하게 즐거웠던 그 시절의 기억을 찾아보세요."
4. Vitals (몸과 마음 돌보기) 스마트폰 사용을 2주간 통화 기능만으로 제한한 실험에서, 사람들의 기쁨 수치가 우울증 치료 수준으로 올라갔어요.
5. Vision (기쁨 계획하기) "기쁨을 계획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아요. 아이를 학교에 제시간에 데려다주면 거실에서 조용히 커피 한 잔 마시겠다는 식으로요."
조셉 박사의 조언은 명확해요. "멈추라는 게 아니에요. 조금만 천천히 하라는 거예요."
점심시간에 하루만 모니터를 끄고 밥을 천천히 씹어보세요. 맛을 느끼면서 말이에요. 그것만으로도 자신을 인간답게 대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