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년째 제자리걸음, 내 노력이 부끄러워질 때: 노력의 총합이 보란듯한 성과로 전환되지 않을 때조차 계속하는 이유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 한들 뚜렷한 성과가 없으면 과정도 의미 없어지는 것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가령 영어공부 N년차인데 스피킹 실력은 늘 제자리걸음입니다. 얼마나 오래 했는지 밝히기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올해 초부터 주 3회 달리려 했고 거의 400km 가까이 뛰었는데 여전히 평균 페이스가 7'30''-40'' 정도고, 3km 천천히 뛰는 것도 힘들 때가 많습니다.
23년 10월부터 시작한 프로그래밍 공부도 누적 300일 정도인데 영어로 치면 CEFR A1 레벨 정도입니다. 백지와 같은 비기너는 아니지만 초급 수준입니다.
똑같이 시작한 비개발자 누구는 반 년 공부해서 유료 어플도 출시합니다. 다른 누군가는 영어공부 2-3년 만에 스피킹을 유창하게 합니다. 잘 된 케이스만 눈에 띄는 것일 테지만 저라고 비교의 늪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자기계발서에 뻔하게 나오는 내용이 있습니다. 매일 1% 꾸준히 하다 보면 복리의 법칙이 작용하여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는 순간이 온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의문이 듭니다. 나의 노력과는 별개로 작동하는 외부 요소가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문제는 노력의 ‘양’이 아니라, 그 노력이 성과로 전환되는 ‘방식’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의 꾸준함이 적절한 환경이나 계기라는 촉매를 만나지 못하면, 그저 공회전처럼 맴돌기만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촉매’가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런 고민의 지점에서 윤여정 배우의 말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남들보다 특별해서가 아니라 버텨봤고, 해봤고, 또 해본 사람이 제일 무서운 사람이야. 무슨 일이든 별일 아닌 것처럼 해내는 사람 있지. 그 사람은 그만큼 지나온 게 많은 사람이야. 나는 그런 사람 못 이긴다고 생각해." -출처
여기서 말하는 ‘버틴다’는 것은, 그저 수동적으로 시간을 견디는 것이 아닐 겁니다.
해보고, 또 해보는 능동적인 시도의 축적을 의미할 거예요. 결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다른 방법을 시도하고, 작은 실패들을 겪어내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힘. 그것이 진짜 버티는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과정이 벅찬 자신감을 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명확한 성과를 얻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물 대신, 훨씬 더 단단한 무언가가 내 안에 쌓이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바로축적된 노하우와습관이라는 자산입니다.
N년간의 영어 공부가 제게 유창함을 주진 못했지만, 다양한 영어공부 방법을 시도해보고 그 과정을데이터로 남겼습니다. 400km의 달리기는 페이스를 단축시키진 못했어도, 언제든 운동복을 입고 달리러 나가는 행위 자체를 반자동화하는 습관을 만들었습니다. 실패의 경험조차 나만의 노하우가 되고, 꾸준한 행위는 그 자체로 자산이 된 것입니다.
이는 멘탈이 흔들릴 때도 계속 하게끔 중심을 잡아주는 닻입니다.
물론 이 닻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매일같이 완벽할 리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죠.
"결국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은 하루의 완벽함이 아니라, 불완전한 하루들의 꾸준한 누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프로그래밍좀비
불완전한 하루들의 꾸준한 누적이라는 말이, 아래 토스 이승건 대표의 말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95%는 포기한다. 5%는 그냥 계속 간다. 운이 올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가 말한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란, 완벽한 하루를 보내며 운을 기다리는 것이 아닐 겁니다. 때로는 대충 하고, 어떤 날은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결국 그 자리를 완전히 떠나지 않고 불완전한 하루들을 쌓아가는 것. 그렇게자신의 닻에 무게를 더해가는 과정인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성과라는 잣대 앞에서 자기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려 할 때 잠시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결과가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도 나만의 노하우와 습관이라는 닻의 무게를 올리는 데 집중해보려 합니다.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다음 시도, 또 다른 시도를 해볼 수 있는 단단한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