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담 현장에서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 이곳보다 나를 더 낫게 만들어줄 다른 어떤 환경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입니다. 그것이 직업일 수도 있고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현재가 불만족스럽기에 변화를 도모하고자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습니다.
뉴욕털게라는 별명을 쓰는 유튜버 한그루 님이 이번에 낸 『깨달은 들짐승처럼 살기로 했다』가 이 고민에 일부 답을 준다고 느꼈습니다. 저자는 이런 고민을 '최적화'의 추구로 표현합니다. 제가 이해한 최적화란, 개인의 특성에 따라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는 각기 다른 경로가 인생에 존재한다고 보고 그 경로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입니다.
최적화에는 장단점이 모두 존재합니다. 살면서 우리가 경험해 왔듯이 최적화를 추구하면 연봉이 높아진다거나 과거 연인보다 나와 더 잘 맞는 파트너를 찾을 가능성이 분명 있습니다. 자신에게 명백히 해를 입히는 환경이라면 더 나은 환경으로 벗어나야 하는 게 맞고요.
하지만 이런 극단적 환경이 아닌 이상 지나친 최적화 추구는 현재 내가 가진 것에 주의를 두기 어렵게 하고 만족감도 떨어뜨립니다. 가령 연봉을 인상하여 회사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금 구직 사이트를 수시로 들락거리게 된다면, 아무래도 지금 자리의 좋은 점을 간과하기 쉬울 테죠.
심리학에도 비슷한 실험이 있습니다. 배리 슈워츠는 가능한 모든 선택지를 검토해 최선을 찾으려는 사람을 극대화자(maximizer), 기준을 충족하는 선택지를 만나면 거기서 멈추는 사람을 만족자(satisficer)라고 불렀습니다. 극대화자는 만족자에 비해 구매 의사결정 후 만족도가 떨어지며,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경향이 더 강했습니다. 극대화자는 객관적으로 더 나은 조건을 얻어내는 경향이 있지만, 자기 선택에 대한 만족도는 오히려 더 낮고 후회는 더 많습니다. 더 좋은 것을 얻고도 덜 행복한 셈입니다.
저자가 책에서 한 말이 이 문제를 잘 설명해주는 것 같습니다.
최적화는 머릿속 게임이지만 삶은 나를 던져 살아내야 하는 실재다. (중략) 머릿속 게임과 몸의 게임은 다르다. '어떤 길을 선택하는가'와 '그 길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는가'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며, 장기적으로 삶을 좌우하는 것은 전자가 아니라 후자다. 전자에 에너지를 쓸수록 후자는 방치된다. 다시 말해 묘수를 두려 집착할수록 악수를 두게 된다. - 깨달은 들짐승처럼 살기로 했다
머릿속 게임을 하는 것과 몸으로 부딪히며 삶을 살아가는 것은 저자의 말대로 전혀 별개입니다. 최적화를 위해 시뮬레이션을 아무리 돌려본들 우연한 변수가 많기 때문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행운이라 생각했던 것이 불운이 되고 불운이라 생각했던 것이 행운이 되는 역설과 마주하며, 역시 인생사 새옹지마라 여기게 됩니다.
더 문제는, 극대화자가 구매 확정 후에도 내가 한 선택이 최선인지 알기 위해 끊임없이 남의 선택과 비교하는 과정에서 후회와 낮은 만족을 경험할 가능성이 컸듯이, 최적화 시뮬레이션을 계속 돌리다가 정작 현재를 살지 못한 채 불만과 짜증만 늘어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상태라면 설령 최적화 목표를 일시적으로 달성했다 하더라도, 곧바로 이어지는 또 다른 최적화 과정에서 불만과 짜증이 반복될 가능성이 큽니다. 항상 여기보다 더 나은 다른 어떤 곳이 있다고 여기며 곧바로 움직일 태세를 취할 테니까요.
야생에서는 성장을 위한 최적의 조건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아무것도 고정되어 있지 않은 뒤죽박죽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풍족할 것 같던 산기슭에 살다가도 먹이가 떨어지면 미련 없이 새로운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중략) 최적을 따지는 것 자체가 어떤 고정된 상황을 설정하는 것인데 야생에서는 의미가 없다. - 같은 책
야생에서 동물은 최적의 서식지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지금 먹을 것이 있으면 먹고, 위험하면 피하고, 먹이가 떨어지면 다른 곳으로 이동합니다. 중요한 것은 ‘최적의 환경’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책의 제목인 ‘깨달은 들짐승’이라는 말이 이해됩니다.
들짐승은 최적화를 하지 않습니다. 계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깨달은 들짐승’은 조금 다릅니다. 계산을 못 해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계산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지나치게 계산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이해한 대로 다시 말하면, 삶은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연속적인 과정이고 문제가 다 해결된 최적의 상황은 결코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지나치게 계산하지 않습니다. 잠시나마 최적의 상황에 들어서게 되더라도 인생에는 내가 예상할 수 없는 일이 계속 생깁니다. 그러니 계획을 세우되 그 계획이 언제나 틀어질 수 있다는 것을 수용하고, 좋은 것이든 좋지 않은 것이든 삶이 선사하는 경험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태도, 이것이 잘 사는 것 아닐까요.
최근 『오뒷세이아』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저승에서 오뒷세우스가 만나는 아가멤논은 트로이아 전쟁의 총사령관이었습니다. 십 년의 전쟁을 치르고 마침내 승리를 거둔 사람이지만, 고향에 돌아온 뒤 자신의 아내 클뤼타임네스트라에게 살해당합니다. 트로이아의 모든 변수를 계산하며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이 정작 자기 집 문턱 너머에서 기다리는 죽음은 계산하지 못한 셈입니다.
생각해보면 인간은 아무리 많은 변수를 계산해도 삶의 마지막 변수까지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현생에서 최적화에 나름 성공하며 많은 돈과 명예를 쌓았어도 죽음이 언제 올지 예측할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인생은 짧고 언젠가 죽을 운명임에도 현재를 과도하게 희생한 채, 죽음을 직시하지 못한 채, 미래의 가능성만을 좇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지 않나 싶습니다. 저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고, 최적화를 지나치게 추구하면 장기적으로 자신에게 손해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저자도 말하듯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실상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삶이 내게 허락하는 경험에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가 더 중요한 과제이고, 결국 이것이 죽을 때 후회를 얼마나 덜 하느냐와 연결되지 않을까 합니다.
인생에 최적의 선택이 분명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최적의 삶이 완성되는 순간은 아마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만큼 선택하고, 선택한 뒤에는 그 삶을 살아내는 것. 어쩌면 잘 산다는 것은 최적의 삶을 찾아가는 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최선이라 생각하는 선택을 하고, 선택 이후 주어진 삶을 기꺼이 살아내는 일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출퇴근길에 책 귀퉁이를 여럿 접으며 읽었음을 밝힙니다.
매체의 효율성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면 정보 흐름의 속도를 너무나도 높여서 사람들이 더 이상 무언가를 세심히 읽고, 체계적으로 평가하고, 의문을 곰곰이 생각할 호사를 누리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중략) 주의 집중이 깨지고, 이해의 폭은 좁아진다. 의사소통이 지식과 공감을 막는 장벽을 무너뜨리는 대신, 의사소통 자체가 장벽이 되는 것이다. - 슈퍼블룸
니콜라스 카가 쓴 『슈퍼블룸』은 SNS를 비롯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유대를 약화시키고 분열을 조장하며 정체성까지 변모시키는지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주옥같은 문장이 많아서 제 생각은 빼고 인용만으로 이 글을 채울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카가 비판하는 방식입니다. 단편적인 문장을 빠르게 훑으며 아무것도 곰곰이 생각하지 않는 것 말입니다.
SNS의 등장으로 주의력이 심각하게 저해되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AI는 무언가를 꼼꼼하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읽고 자기 생각을 글로 정리하려는 일체의 시도를 무력화하고 있습니다. 생각을 하려면 생각에 집중할 시간이 필요한데, 지금처럼 정보의 흐름이 빠른 시대에는 "곰곰이 생각할 호사를 누리"기 어렵습니다. 그런 시간이 있다 하더라도 클릭 한 번으로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얻고 자신이 가진 정보를 상황에 맞게 재가공할 수도 있는 시대에, 생각을 AI에 위임하지 않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최근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책들이 눈에 띄기도 하고요.
학부 때 교육공학 수업에서 마셜 매클루언을 배웠습니다. TV든 인터넷이든 매체는 생각의 내용뿐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특히 SNS라는 매체는 단편적인 사고를 조장할 뿐 아니라 편향된 사고를 강화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다는 것이 니콜라스 카의 주장입니다.
개인의 경우 한 종류의 관점에만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오류와 혼동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기존의 견해가 고착화되고, 거짓이 퍼지고, 극단주의가 조장되며, 사람들이 공동의 문제를 두고 협력할 수 없게 되면 사회 전체에 위험이 초래될 수 있다 - 캐스 선스타인, 『공화국닷컴(Republic.com)』(2001), 슈퍼블룸에서 재인용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닷컴버블 시기에 이런 선견지명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주지하다시피 SNS의 알고리즘은 본인이 보고 싶은 것을 보여줍니다. 특히 정치와 관련해서는 내가 왼편에 있든 오른편에 있든 성향을 빠르게 분류해 그에 부합하는 논조의 메시지를 주로 보여주기 때문에 편향이 조장되기 쉽습니다. SNS가 상대 진영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는 순기능을 하리라던 초창기의 기대와 달리,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는 분열의 장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입니다.
"상황을 유형과 일반성에 따라 분류하지 않고 상세하고 새롭게 파악하려는 시도는 대단히 피곤하고, 바쁜 일상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나이가 들어가고 각자의 의견과 삶의 틀이 더욱 고착화되면서 현실의 필터로서 스테레오타입은 더욱 힘이 세어진다. "우리는 대부분의 일을 경험하기 전에 상상한다" 그리고 우리의 선입관은 "인식의 전체 과정을 깊숙이 지배한다" - 월터 리프먼 『여론』(1922), 슈퍼블룸에서 재인용
이 글이 쓰인 시기를 보면, SNS가 인간에게 없던 특성을 만들어냈다기보다 원래 있던 본성을 증폭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온라인의 내가 현실의 나보다 더 진짜 내가 되어버리는 시뮬라시옹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시뮬라시옹은 어릴 때 읽었는데 기억나는 게 별로 없어 AI에게 물어보니, 장 보드리야르가 1970년대 후반부터 발전시켜 1981년 『시뮬라시옹』에서 정리한 개념으로 가짜가 진짜를 압도해 현실을 대체하는 과정이라고 알려주네요.
공연을 보러 가서도 그 순간을 스마트폰에 담는 데 집중한 나머지 경험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역설적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 이후로는, 공연 볼 때 사진 한 장 안 찍기도 합니다. 현실을 영상이나 이미지로 담아내려는 노력은 소셜미디어에 올려 관심을 받고자 하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다시 본다는 것은 부차적인 목적인 것 같고요. 관심 받기 위해 경험을 희생한다고 생각하니 이런 본말전도가 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날 인터넷 사용자는 평균 8~9개의 소셜 미디어 계정을 오가는데 이는 10년 전의 두 배에 달하는 숫자다. 많은 이에게 온라인에서 가상의 존재감을 유지하는 것이 풀타임 일처럼, 최소한 몰두와 집착의 대상처럼 변했다. - 같은 책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든 하지 않든, SNS에 나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이미지와 영상과 글을 업로드해야 한다는 점에서 전 국민 유튜버 시대이기도 합니다. 어떤 메시지를 어떤 형식으로 올려야 더 많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지 기획하고 호객도 한다는 점에서 누구나 일종의 마케터이기도 하고요. 본업과 가정이 있는 아빠로서의 페르소나뿐 아니라, 철학·심리학 북튜버로서의 온라인 페르소나도 더 많은 좋아요와 구독으로 생명력을 잃지 않게끔 매일 책 읽고 메모해야 합니다.
그런데 동료 선생님과 같이 유튜브 채널 운영을 8개월쯤 하다 보니, 책 읽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려고 시작한 일인데 어느새 구독자 수와 좋아요와 댓글을 틈틈이 확인하고 있는 저를 봅니다. 현실의 독서 경험이 가상 공간의 반응 예측에 잠식되는 느낌입니다. 작년 베스트셀러 중 하나였던 『경험의 멸종』이라는 책도 떠오르네요. 이제는 가상이 현실이고, 현실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잠재적 콘텐츠"로 기능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사고를 외주하고, 이데올로기적 편향이 조장되고, 가상의 내가 현실의 나보다 존재감이 커지는 사회. 그러면서 정신건강은 그만큼 악화되는 경향이 있는 사회. 이런 테크놀로지 중심 사회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저자의 기술은 책 마지막 챕터에 20페이지가 채 안 됩니다. 다만 애초에 그런 것을 기대하고 읽은 책이 아니기에 저는 흥미롭게 읽었고, 저자의 전작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읽어보고 싶습니다. 인터넷이 우리의 사고와 집중력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초점을 맞춘 책이라는 점에서 슈퍼블룸과 연속성을 지닙니다.
잔향 심리학 뉴스레터 | 발신자: 오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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