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봄으로써 앞으로 나아가기: 새해의 추진력을 높이는 연말 회고 가이드
12월입니다. 새 다이어리나 노트앱 템플릿을 열어놓고 내년 목표를 적으려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운동 열심히 하기", "저축하기", "자격증 따기"... 그런데 하나만 여쭤볼게요. 작년에 세운 목표, 기억나시나요?
세계적인 동기부여 전문가 Mel Robbins는 남편과 22년간 매년 해온 연말 의식이 있다고 합니다. 그 핵심은 "새해 계획을 세우기 전에 지난 1년을 먼저 돌아본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올해 정말 힘들었는데 굳이 왜 다시 꺼내봐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비게이션을 켤 때 목적지만 찍으면 안 됩니다.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경로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지난 1년간 무엇이 나를 웃게 했고 무엇이 나를 울렸는지 모른다면, 내년의 목표는 그저 허황된 바람에 불과합니다.
"멋진 한 해는 우연히 오지 않습니다. 철저한 자기 인식과 선택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힘든 건 잊고 앞만 보자"라고 우리는 흔히 생각합니다. 하지만 UC Irvine과 Penn State의 2018년 연구에 따르면,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고 무시하려는 사람일수록 스트레스가 신체에 축적되어 일상이 더 힘들어집니다.
반면, 힘들었던 경험을 직면하고 글로 적어내면 '심리적 거리두기(psychological distancing)'가 가능해집니다. 미시간 대학교 Ethan Cross 교수는 이 과정이 감정의 무게를 덜어내고, 그 경험을 객관적인 '데이터'로 바라보게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일기를 쓰는 것만으로도 통제감을 되찾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남들이 좋다고 해서 세운 목표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구분합니다. 외부의 압박이 아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가 있어야 행동이 지속됩니다.
Mel Robbins는 휴대폰 사진첩을 1월부터 넘겨보며 이 동기를 찾으라고 조언합니다. 예를 들어, 가족사진에서 항상 내가 맨 뒤에 숨어 있거나 표정이 어둡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칩시다. 이때 "살을 빼야겠다"는 결심은 단순한 다이어트가 아닙니다. "가족들과 당당하게 추억을 남기고 싶다"는 강력한 욕구가 됩니다.
Cornell 대학교 Karl Pillemer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80~100세 노인들이 꼽은 인생의 가장 큰 후회는 실패가 아니라 "하지 못한 말"과 "함께하지 못한 시간"이었습니다. 후회는 괴롭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행동의 동기로 삼을 수 있습니다. 사진첩이든 캘린더든 일기든 지난 1년의 기록을 돌아보는 것은 이러한 후회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가장 확실한 예방주사입니다.
Mel Robbins가 제안하는 연말 의식은 과거를 정리하는 3가지 질문과 미래를 설계하는 3가지 질문(Stop-Start-Continue)으로 구성됩니다.
휴대폰 사진첩, 캘린더, 일기 등을 1월부터 천천히 넘기며 아래 세 가지 질문에 답해보세요.
- 올해의 저점(Low Point)은 무엇이었나요?
- 무엇이 나를 무너뜨렸고, 지치게 했으며, 마음 아프게 했나요?
- 올해의 고점(High Point)은 무엇이었나요?
- 무엇이 나를 웃게 했고, 에너지를 주었으며, 살아있다고 느끼게 했나요?
- 무엇을 배웠나요?
- 저점과 고점의 목록을 보면 나에 대한 패턴이 보입니다.
[PART 2] 미래 설계: Stop-Start-Continue
글로벌 기업들이 전략 수립에 사용하는 프레임워크를 개인 삶에 적용합니다.
"두려움 때문에 그만두는 것과 더 이상 가치관에 맞지 않아서 그만두는 것은 다릅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목표의 우선순위를 반드시 선택해야 합니다. Georgetown 대학교 Cal Newport 교수는 "진정한 생산성은 더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지 않은 것을 쳐내는 데서 온다"고 말합니다.
- 매일 밤 잠들기 전 둠스크롤링하고 자괴감 느끼는 것
- 나에게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는 관계에 에너지 쏟는 것
- "나는 원래 이래"라며 스스로에게 핑계 대는 것
- 다른 사람 기대에 맞추느라 정작 나를 뒷전으로 미루는 것
CONTINUE: 무엇을 계속할 것인가 (유지)
고점(High Point) 리스트를 다시 보세요. 그 순간들이 단순히 우연히 일어난 게 아닙니다. 그 행복한 순간을 가능하게 만든 '핵심 재료'가 무엇이었나요? 그것이 바로 내년에도 가져가야 할 'Continue' 항목입니다.
- 가족과 여행 갔을 때(고점) 가장 좋았다면? → "가족과 함께하는 야외 활동" (Continue)
- 친구들과 웃고 떠들 때(고점) 살아있음을 느꼈다면? → "친구와의 정기적인 약속 잡기" (Continue)
- 무언가를 배웠을 때(고점) 에너지가 솟았다면? → "새로운 배움 시도하기" (Continue)
이처럼 막연히 좋은 습관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내 지난 1년을 실제로 빛나게 해 줬던 행동들을 선별하여 가져가는 것입니다.
시작이 제일 어렵습니다. 그러니 일단 시작을 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생각하면 됩니다. 바로 행동을 시작할 때 삶의 개선을 경험하게 됩니다.
- 일주일에 한 번은 친구 만나기
- 30분만 일찍 자보기
- 회의에서 내 의견 한 번은 말해보기
- 예전에 좋아했던 취미 다시 해보기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당신 인생에서 무엇이 가능한지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시작하는 용기가 없으면 절대 알 수 없습니다."
4. 저의 2025년 결산: 6가지 질문에 직접 답해보니
저 또한 이 프레임워크를 통해 지난 1년을 돌아보았습니다. 데일리 노트와 주간 리뷰 노트를 다시 들춰보는 게 마냥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관계 때문에 힘들었던 시간들, 의지대로 되지 않아 자책했던 날들이 떠올랐거든요.
하지만 기록을 정리하며, 힘들었던 순간이든 좋았던 순간이든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느낍니다.
📉 나의 저점: "관계의 갈등, 그리고 전문가로서의 중압감"
올해의 1/3은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 문제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매년 반복되는 문제로 벽에 부딪히는 기분이었습니다. 직업적으로는 책임져야 할 역할이 커지면서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상담이 몰릴 때, 어려운 케이스를 마주할 때마다 '내가 잘하고 있나?'라는 의심과 중압감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 나의 고점: "가족 및 친구와 여행하던 순간, 그리고 달리는 기쁨"
가장 빛났던 순간 역시 '관계'에 있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국내외를 여행하던 순간, 부산 락페스티벌이 끝나고 친구와 영도 앞바다를 보며 마셨던 맥주, 동료 선생님과 함께 달린 서울어스마라톤이 떠오릅니다.
무엇보다 첫 하프 마라톤에 참가하여 두 다리로 마포대교를 건너는 경험이 강렬했습니다. '달리기의 생활화'라는 나름의 목표를 달성하며 몸이 건강해지니 마음도 조금은 넓어짐을 느꼈습니다. 상담에서 중압감을 느끼던 차에 서울시 표창을 받은 것 또한 전문가로서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
💡 무엇을 배웠나: "나를 지탱하는 핵심 변수 발견"
저점과 고점을 비롯하여 기록된 데이터를 찬찬히 살펴보니 저의 상태를 상당 부분 결정짓는 패턴이 보였습니다.
- 저점의 순간들: 관계 문제나 업무 중압감으로 바닥을 칠 때(저점), 공통적으로 수면 패턴이 어그러지거나 운동을 멈추고 있었습니다.
- 고점의 순간들: 반면 성취감을 느끼거나 평온하고 안정적이었던 시기(고점)에, 잠을 충분히 자거나 아침에 달리고 있거나(여행지에서도) , 경험한 바를 기록하며 객관화하고 있었습니다.
이 데이터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일정한 수면 스케줄, 달리기, 기록은 저를 저점에서 건져 올리고 고점으로 이끄는 '구명조끼'이자 '엔진'이었습니다. 특히 힘들어서 못 뛴 게 아니라, 뛰지 않아서 더 힘들었다는 것을 데이터를 통해 확인한 것이 의미 깊습니다.
🚀 2026년을 위한 설계 (Stop-Start-Continue)
- STOP (그만두기): 타인의 마음이나 행동은 제 통제 범위 밖입니다. 통제 불가능한 것에 대한 걱정을 멈추고, '내가 할 수 있는 반응'에만 집중하려 합니다. 또한, 늦게 잠에 따라 다음 날 컨디션이 저조해지는 수면 패턴을 끊어내겠습니다.
- CONTINUE (계속하기): 달리기는 저에게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감정조절제'이자 '인지기능 강화제'였습니다. 25년 성취한 것보다 200km 목표를 높여 연간 누적 900km 달리기를 목표로 아침 달리기를 지속합니다. 습관의 복리 효과를 믿고 영어공부 습관, 기록과 회고 습관 또한 계속 가져갑니다.
- START (시작하기): 상담가로서의 정체성에 더해, 기술(Tech)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려 합니다. 2026년은 "달리기를 꾸준히 하며 개발 분야로 커리어를 확장하는 해"로 정했습니다. 방송통신대 3학년 편입을 통해 개발 및 데이터 관련 공부를 본격화하고, 25년도에 주춤했던 글쓰기에서도 다시금 구체적인 아웃풋을 만드는 한 해를 시작하려 합니다.
5. 마치며: 쓰는 순간 현실이 된다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당신 인생에서 무엇이 가능한지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지난 1년이 힘들었을수록, 그 기억을 꺼내보는 것은 불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이 바닥이라 하더라도, 깊은 자기성찰이 삶의 품격을 높여줍니다. 남들의 평가가 아닌 나만의 평가, 나에 대한 데이터를 믿으세요.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것과 글로 적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기록은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를 연결시키는 적극적 행위입니다. 오늘 밤, 조용한 시간을 내어 지난 일 년을 회고해 보세요. 당신의 지난 1년은 흘러가버린 시간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가장 소중한 데이터입니다.
💬 질문: 당신의 지난 1년 중 '저점'과 '고점'은 각각 무엇이었나요? 그 데이터는 내년에 무엇을 'Stop'하고 무엇을 'Continue'하며 무엇을 'Start'하라고 말해주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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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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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내비게이션의 도착지와 같습니다. 현재 위치를 알아야 경로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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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려면 목표 설정과 사후 평가(회고)가 둘 다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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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쓰면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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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는 괴롭히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 행동의 동기로 삼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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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목표의 우선순위를 반드시 선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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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제일 어렵습니다. 그러니 일단 시작을 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생각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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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만 세우지 말고 바로 행동을 시작할 때 삶의 개선을 경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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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들이 나를 버티게 합니다. 깊은 수렁에서 나를 조금씩 끌어올리는 것이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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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상황에서도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의 가능성이 있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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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은 복리로 작용합니다. 작은 습관들이 시간이 지나며 큰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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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바닥이라 하더라도 자기성찰이 삶의 품격을 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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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를 연결시키는 적극적 행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