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가치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살펴볼까요. 저자는 2017년 무렵에 [Peak Performance]라는 책을 내고 성공을 거두지만 자살사고가 수반되는 심한 강박장애로 인해 괴로움을 경험합니다. 생산성 방면의 전문가였지만 정신건강 문제로 고통 받고 있었고, 대중에게 이를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로 결정합니다. 자신에게 정직함이 중요한 가치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후 그의 경력은 이전과는 다른 궤도에 오르게 됩니다.
저자의 경험에서 시사되듯이 변화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아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1000개의 메모 연결 91주차] 커리어와 부캐의 접점을 찾는 법에서 이야기하였듯이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다양한 방을 내면에 지니고 있다면 상황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더욱 수월합니다. 이때 정체성을 이루는 여러 방을 통합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이 가치이며, 가치가 불명확한 상태에서 방만 많이 지녔다면 인격의 통합성이 낮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의 핵심 가치는 재미, 자율성, 성장, 인내, 자기조절입니다. 제가 지닌 방들은 이 핵심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에 서로 크게 이질적이라 느끼지 않습니다. 지금은 한 방(심리학자로서의 방)에 주로 머물고 있지만, 나이가 들거나 상황이 변화하여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이동해야 할 때 두 방이 가치를 공유한다면 이동이 수월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모든 게 안정적으로 보이는 시기에도 언젠가 상황이 내 손에서 벗어나 안 좋게 흘러가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의 중요성을 언급합니다. 이러한 예측을 염두에 두는 정도에 따라서 실제 그러한 암울한 변화의 시기에 처했을 때 상황에 대처하는 우리의 양상에는 큰 차이가 발생하게 마련입니다. 언젠가 총에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군인이 다리에 총을 맞은 경우와 아무런 생각이 없다가 괴한에 의해 갑작스레 다리에 총을 맞은 민간인의 경우에 심리적 및 신체적 반응에서 상당한 차이가 예상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군인의 경우라면 현실을 직시하고 보다 의식적으로 반응할 테고 민간인의 경우라면 상황에 압도되어 혼란스럽게 반응할 것입니다. 요지는 낙관적으로 느껴지는 상황에서도 부정적인 쪽으로 상황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예측할 수 있을 때 상황 변화에 더 의식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수동적 반응(reacting)과 능동적 반응(responding)의 차이로 이를 한 번 더 설명합니다. 능동적 반응은 상황에 압도되기보다 통제 불가한 측면을 있는 그대로 수용(혹은 직시)하면서 대처 방안을 숙고하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저자는 빅터 프랭클을 인용하며 비극적 낙관주의(Tragic Optimism)를 말합니다. 비극뿐만 아니라 낙관이 포함된 것은 미래의 부정적인 상황 변화를 예측하면서도 희망을 견지하기 때문입니다. 통제 불가한 측면을 수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희망이 없다면 상황에 압도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완벽주의는 유전적인 요소가 30~40%이며 나머지는 사회문화적인 요인의 영향에 따라 형성되는 성격 특성과 같습니다. 외향성이나 성실성과 마찬가지로 완벽주의는 스펙트럼(즉, 연속선)상에 위치하게 됩니다. 즉, 어떤 사람은 이 특성을 미약하게 지닌 쪽에 위치할 수 있고, 다른 어떤 사람은 그 반대편에서 매우 뚜렷한 완벽주의적 특성을 보일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동양이나 서양 모두 일터에서초과 달성을 강제하는 분위기이기 쉽습니다. 인터뷰이 역시 경쟁적 교육 시스템이나 일터에서의 사회적 기대가 사람들의 완벽주의를 강화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가령, 예전과 달리 익명의 수많은 사람들의 별점 평가를 받아야 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별 다섯 개를 받고자 완벽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화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과학적 근거는 완벽주의가 성과와 관련이 없을 가능성에 더 무게를 싣습니다. 인터뷰이는 식단 관리, 수면, 운동처럼 활력을 되찾을 수 있게 돕는 일상적 활동이 희생되기 때문에 오히려 일의 효율이 감소하는 점을 첫 번째 이유로 듭니다.
두 번째 이유가 흥미롭습니다. 완벽주의자는 200%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어떤 시도에서 성공하지 못할 경우, 더 이상의 노력을 포기합니다. 실패로 인한 자존감의 타격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또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아예 재시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일이 잘 풀릴 때는 관계 없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실패 가능성에 더 초점을 맞추며 노력을 들이지 않기 때문에 발전의 가능성도 사라집니다. 일을 미루게 되는 한 이유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심신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완벽주의의 해법은 무엇일까요. 저는 덜 완성된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일단 데드라인 전에 완료하는 게 완벽을 추구하다가 데드라인을 넘기는 경우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완벽주의적 성향이 미약하고 성격도 급한 편에 속하는 저로서는 이런 완료주의적 태도가 잘 맞습니다. 반면 인터뷰어인 Ali Abdaal은 말이 쉽지 완료주의를 실행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이 말에 공감하시나요?
인터뷰이는 완벽주의의 덫에서 벗어남에 있어 자기수용(self-acceptance)의 중요성을 언급합니다. 여기서 수용은 무엇일까요 빙챗에게 물어봤습니다. "수용전념치료에서 '수용’이란,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나 기분이 나쁜 생각이 들 때도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을 말해. 예를 들어, 너가 시험에서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을 때 슬픔을 느낄 수 있어. 이럴 때 '수용’은 그 슬픔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야." 시험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아 슬퍼하는 자신을 비판하는 것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슬퍼할 겨를이 없다면서 슬픔을 억누른 채 빨리 다음 시험을 준비하는 것도 수용이 아닙니다. [꼭 알고 싶은 수용-전념 치료의 모든 것]을 쓴 이선영이 사용한 비유를 빌려오면, 캐시미어의 감촉을 느끼듯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이 수용입니다.
그렇다면 자기를 수용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인터뷰이는 실천 가능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즉, 자신에게 친절함으로써 자기수용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가령 상사에게 깨진 날, 미리미리 준비해서 업무의 완성도를 높이지 않은 자신을 질책하기보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항상 좋은 소리만 들을 수는 없다. 지금 상황에서 나는 할 만큼 했다. 그래도 기분이 안 좋긴 하네.'라며 혼잣말할 수 있겠죠. 이미상처 받은 자신에게 자기비판이라는 소금을 뿌려서 상처를 더 쓰리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감정은 그대로 느끼되, 인간은 본래 불완전하고 실패도 자연스러움을 받아들이며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인터뷰이가 말하는 자기수용입니다.
완벽주의의 덫에서 벗어나는 또 다른 방법은 목표를 너무 구체적으로 설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실성과 인내력이 모두 높은 사람이라면 목표가 구체적일수록 달성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가령 일 년 동안 원서를 몇 권 읽겠다고 정할 수 있겠지만, 200페이지 이상의 원서를 한 달에 한 권 읽겠다는 식으로 구체화하지 않는 것이죠. 이런 식의 목표 설정은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줍니다. 일이 어느 때는 많고 어느 때는 적은 경우라면 더 그렇겠죠.
칼 뉴포트가 했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에피소드가 마무리됩니다. 제게는 위 두 가지 방법보다 이 마지막 한 문장의 영향력이 더 크네요. "This one just needs to be reasonable. The next one is going to be good.(이만하면 충분하다. 다음에는 더 좋을 거야.)" 기대 수준을 너무 높이기보다 적당한(reasonable) 선에서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현명한 대처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