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로드코드로 사용자에게 맞는 청년정책을 클릭 한 번으로 찾아주는 플랫폼을 만들고 있습니다. 방송대 컴퓨터과학과 소프트웨어 경진대회에 출품하려고요.
유용한 청년정책이 많은데 내 상황에 맞는 정책을 찾으려면 상당한 검색을 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심리적 장벽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클로드 모델 중 가장 똑똑한 Fable 5와 Opus 4.8을 사용해 10일 넘게 작업하는 중입니다. 조건 선택, 순차 선택 같은 기본적인 파이썬 문법도 헷갈려서 시험에서 틀린 저 같은 사람도 여러 가지 기술적 장벽을 뛰어넘어 복잡하고 정교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세상이 도래했다는 게 짜릿합니다.
AI가 모든 장벽을 쉽게 허물어 버리니 이처럼 인간의 편의가 좋아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AI의 등장으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이 점점 어려운 일이 되어 갑니다. 가령 AI가 없었다면, 작동하지 않는 단순한 코드를 작동시키려고 검색을 열심히 하며 머리를 많이 썼을 겁니다. AI 없던 시절에는 개발자들도 스택 오버플로우 같은 사이트를 뒤지며 버그를 고치려고 애썼다 하고요. 시간을 들여 내 머리를 쓰는 만큼 학습 효과도 분명했겠지요. 하지만 딸깍 한 번으로 문제해결이 상당 부분 이루어지는 대딸깍의 시대에 학습은 점점 더 수고스러운 일이 되어갑니다.
예전에는 어쩔 수 없이 인내하며 배워야 했는데 AI가 등장하면서 그런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학습이란 내 머리를 충분히 쓰는 수고를 해야 하는 과정이기에, AI가 깔아놓은 고속도로를 무지성으로 달려가다 보면 내 머리에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인지적 부채만 쌓여갑니다. AI가 아무리 깔끔하게 코드를 만들어내도, 그 코드가 왜 그렇게 짜였는지, 원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사람이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겁니다.
일이나 삶에 진짜 변화와 진보를 원한다면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길을 택하라. 비록 지루한 과정을 거치겠지만 그러한 단단한 축적은 분명 엄청난 발산으로 보답해줄 것이다. - 축적과 발산 / 신수정
어떻게 다시 적절한 학습의 부하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위 인용문이 말하듯, 효율적으로 보이는 길은 쉽고 빠르겠지만 그런 고속도로가 아니라 적절한 난도의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편이 학습에는 더 유리합니다.
어떻게 하면 학습이 발생할 정도의 적정 부하를 유지할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너무 많은 부하가 오면 학습에서 멀어집니다. 청년정책을 검색하러 들어갔더니 사이트 구조가 직관적이지 않아 길을 잃기 쉽고, 어렵게 내게 맞는 정책을 찾은 것처럼 보여도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가 친절하지 않으면 그 사이트에서 이탈하기 쉽습니다. 학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개발을 공부할 때 매일 공부한 것을 회고하거나 문제해결 과정을 자기가 이해한 만큼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서 그렇게 해보려 했는데 1~2주를 못 갔습니다. 문과생이 개발 공부하는 것도 어려운데 그것을 체계적으로 기록하려니 부하가 너무 커서 나가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개발 공부에서 어떻게 적정 수준의 부하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생각이 많습니다. 개발 공부를 시작한 지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누적 528일차인데도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찾아가는 중입니다. 다만 글쓰기도 논리가 있는 프로그래밍이고 개발보다는 부하가 덜하기에, 한 주에 한 편의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제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결코 아니기에 유료 뉴스레터 발행이라는 환경을 설정해 두고 글을 안 쓸 수 없게 강제합니다.
위에서 인용한 신수정은 AI 시대에 성실성이 더 중요해진다고 봅니다.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저도 재미있게 읽은 장강명의 먼저 온 미래라는 책의 내용을 축적과 발산에서 재인용하는데요. AI 이전 시대에 바둑계에서 성공하려면 남보다 재능이 뛰어나거나, 실력이 출중한 기사들이 모여 있는 기원에 들어가 바둑을 잘 두는 데 필요한 중요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AI 이후는 다릅니다. 많은 시간을 들여 AI와 바둑을 두고 복기 과정에서 AI의 수와 자신이 생각한 수를 비교하며 배운 기사들이 훨씬 더 좋은 성적을 내는 민주화가 이루어졌습니다.
한·중·일·대만 등 동북아 4개국의 인기 스포츠에서 10년 후에는 세계 바둑 민주화로 중동이나 아프리카 같은 오지에서 고수가 나올 가능성이 많아졌다. 강자하고 붙어야 실력이 느는데, 굳이 아시아로 바둑 유학을 오지 않아도 이제 아무 데서나 AI사범을 모시고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먼저 온 미래
AI는 인지적 부채를 만드는 도구가 될 수도, 적정 수준의 인지적 부하를 만들어내는 학습의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낸 인지적 부하를 꾸준히 유지해 나갈 성실함까지 있다면 어떤 영역에서든 비약적으로 전문성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떻게 개발 환경을 구축해야 강제된 뉴스레터 글쓰기와 비슷한 인지적 부하 효과를 낼 수 있을지 AI로 더 모색해 봐야겠네요. AI가 짠 코드를 바탕으로 학습지를 만들어 문제를 풀고, 그 문제를 풀지 못하면 다음 단계 개발로 넘어갈 수 없게 하는 플로우도 생각 중이고요. 좋은 아이디어 있다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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