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데이비드 이글먼이 말하는 감각, 뇌, 그리고 확장 가능한 현실
눈과 귀는 뇌에 정보를 실어 나르는 통로일 뿐, 실제로 보고 듣는 일은 전부 뇌가 한다. 그런데 뇌는 그 정보가 어느 통로로 들어왔는지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눈 대신 혀로 보고, 귀 대신 피부로 들을 수 있다. 원리상 인간에게 없던 감각을 새로 붙이는 것도 가능하다.
한 남자가 치과 진료 의자 같은 것에 앉아 있습니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합니다. 등에는 작은 막대들이 촘촘히 박힌 격자가 대고 있고, 앞쪽에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연구자가 카메라 앞에 커피잔을 놓습니다. 그러자 남자의 등에 커피잔 모양이 콕콕 눌러 찍힙니다. 이번엔 전화기를 놓습니다. 등에 전화기가 그려집니다.
훈련을 거듭한 이 사람들은 카메라 앞에 무엇이 있는지 꽤 정확히 알아맞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보고한 감각이 뜻밖이었습니다. 그들이 느낀 것은 '등에 뭔가 눌린다'는 감각이 아니었습니다. 물체가 저 바깥 어딘가에 있다고 느껴진 것입니다. 1969년, 폴 바크이리타(Paul Bach-y-Rita)가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실험이었습니다. 그는 결과를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The brain is able to use incoming information from the skin as if it were coming from the eyes." 뇌는 피부로 들어온 정보를, 마치 그것이 눈에서 온 것처럼 사용할 수 있다.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David Eagleman)은 이 실험이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것의 정체를 잘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지금 당신이 보고 듣는 세계는 바깥에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당신의 뇌가 아주 좁게 편집해 만들어낸 판본이라는 것입니다.
빨강, 파랑, 초록. 우리는 이것이 세상의 색이라고 믿습니다. 실제로는 물체에 부딪혀 튕겨 나온 특정 파장의 빛이 눈 뒤편의 수용체를 자극한 결과일 뿐입니다. 문제는 그 '특정 파장'이 얼마나 좁으냐입니다. 이글먼에 따르면 우리가 보는 것은 존재하는 빛 전체의 10조분의 1도 되지 않습니다.
전파, 마이크로파, X선, 감마선. 이들도 모두 빛입니다. 진동수가 다를 뿐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몸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관통해 지나가는 수천 건의 휴대전화 통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이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을 받을 수용체를 갖고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파장들이 원래 감지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뱀은 적외선을 봅니다. 꿀벌은 자외선을 봅니다. 우리도 자동차 대시보드에 라디오 주파수를 잡는 기계를, 병원에 X선을 잡는 기계를 만들어 씁니다. 다만 우리 몸에 그 장치가 없을 뿐입니다.
우리는 보통 눈과 귀와 손끝이 바깥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뇌가 실제로 하는 일은 세계 전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중 아주 일부만 표본으로 떠오는 것에 가깝습니다.
동물마다 붙잡는 현실의 조각은 완전히 다릅니다.
진드기는 눈도 귀도 없습니다. 이 생물의 세계를 이루는 신호는 온도와 부티르산 냄새, 그 둘뿐입니다. 검은유령칼고기에게 현실이란 전기장과 그 교란입니다. 바위를 지날 때, 다른 생물이 다가올 때 일어나는 미세한 흔들림이 그의 세계 전부입니다. 반향정위를 쓰는 박쥐에게 세계는 물체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공기 압축파로 지어져 있습니다.
과학에는 이를 부르는 말이 있습니다. 움벨트(Umwelt), 독일어로 '둘러싼 세계'라는 뜻입니다. 각 생물이 감지할 수 있는 현실의 조각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글먼이 짚는 진짜 핵심은 다음 대목입니다. 모든 동물은 자신의 움벨트가 객관적 현실 전부라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감지할 수 있는 것 너머에 무언가가 더 있다고 상상할 이유가 애초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어진 대로의 현실을 그냥 현실로 받아들입니다.
이글먼은 여기서 사고실험 하나를 권합니다. 당신이 집에서 기르는 개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2억 개의 후각 수용체가 박힌 긴 주둥이, 냄새 분자를 붙잡는 젖은 콧구멍, 더 많은 냄새를 끌어올리는 늘어진 귀. 당신에게 세계란 온통 냄새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걸음을 멈추고 인간 주인을 올려다보며 생각합니다. 저 한심하게 작은 코로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100미터 밖에 고양이가 있다는 걸, 여섯 시간 전에 친구가 여기 서 있었다는 걸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우리는 그 냄새의 세계를 그리워하지 않습니다. 아쉬워하지도 않습니다. 애초에 그런 세계가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없는 감각의 자리에는 결핍감조차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온 세상을 다 갖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됩니다. 우리는 태어난 움벨트 안에 갇혀 있어야만 할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뇌가 실제로 무엇을 받고 있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당신의 1.4킬로그램짜리 뇌는 세상을 직접 보거나 듣고 있지 않습니다. 눈이 빛을 뇌 안으로 실어 나르는 것도, 귀가 소리를 배달하는 것도 아닙니다. 뇌는 두개골 안, 완전한 침묵과 암흑의 지하실에 갇혀 있습니다. 그곳에 도달하는 것이라고는 여러 데이터 케이블을 타고 흘러드는 전기화학 신호뿐입니다. 작은 전기 스파이크와 화학물질의 방출. 뇌가 가진 재료는 그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뇌는 이 어둠 속을 돌아다니는 신호에서 패턴을 뽑아내고, 그 패턴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 의미가 곧 당신의 주관적 경험이 됩니다. 당신 삶의 모든 색조와 향기와 감정이, 실은 암흑 속을 내달리는 수조 개의 신호로 부호화되어 있는 셈입니다.
이글먼은 이 대목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Your brain doesn't know and it doesn't care where it gets the data from." 당신의 뇌는 그 데이터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도 못하고, 신경 쓰지도 않습니다.
정보가 들어오기만 하면, 뇌는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 알아냅니다. 진입 경로는 중요한 부분이 아닙니다.
이해가 잘 안 되신다면 이글먼의 다음 상상을 따라가 보십시오. 모두가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난 섬에 당신이 도착했다고 해봅시다. 그들은 점자로 책을 읽습니다. 손끝으로 작은 돌기들을 훑으며 웃고 웁니다. 당신은 의아해합니다. 어떻게 그 모든 감정이 손가락 끝에 담기지?
그래서 당신은 설명합니다. 나는 소설을 읽을 때 얼굴에 달린 두 개의 구를 종이 위의 선과 곡선 무늬로 향하게 하고, 각 눈에 깔린 세포밭이 광자를 붙잡아 기호의 모양을 등록하며, 나는 어떤 모양이 어떤 소리에 대응하는지 규칙을 외워두었기에 감지되는 굴곡마다 머릿속으로 작은 소리를 읊는데, 그 결과로 만들어진 신경화학적 패턴이 나를 울고 웃게 만든다고요.
섬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어려워한대도 탓할 수는 없을 겁니다. 어떻게 그 모든 감정이 머리에 달린 두 개의 구에 담기지?
결국 양쪽 다 같은 결론에 이릅니다. 손끝이든 눈알이든, 그것은 바깥 세계의 정보를 뇌 속 스파이크로 변환하는 주변장치일 뿐이라는 것. 어려운 해석 작업은 전부 뇌가 합니다.
이글먼은 이 원리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PH 모델, 즉 '포테이토 헤드(Potato Head) 모델'입니다. 눈, 귀, 코, 손끝처럼 우리가 아끼는 감각기관들이 실은 감자머리 인형의 부품처럼 꽂았다 빼는 플러그앤플레이 장치라는 뜻입니다. 꽂으면 뇌가 알아서 처리합니다.
동물계를 둘러보면 온갖 부품이 실제로 꽂혀 있습니다. 뱀에게는 적외선을 감지하는 열 구덩이가, 검은유령칼고기에게는 몸을 따라 늘어선 전기수용기가 있습니다. 별코두더지는 22개의 손가락이 달린 코로 3차원 굴을 더듬으며 세계의 모형을 짓습니다. 여러 새와 소, 곤충은 지구 자기장을 느끼는 자기수용 능력으로 길을 찾습니다.
즉 자연은 새로운 감각 장치를 도입할 때마다 뇌를 새로 설계할 필요가 없습니다. 뇌의 작동 원리는 이미 확립되어 있으니, 새 부품만 설계하면 됩니다.
이 모델이 옳다면 예측이 하나 따라옵니다. 유전자에 그 부품의 유무를 결정하는 스위치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습니다. 어떤 아기는 코와 비강, 후각 체계 전체가 없이 태어납니다(무비증). 눈 없이 태어나는 경우(무안구증), 혀 없이, 귀 없이(무이증) 태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통증 수용체가 없는 아이, 촉각 수용체가 없는 아이(무촉각증)도 있습니다.
당혹스러운 사례들이지만, 플러그앤플레이의 틀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유전자가 조금 어긋나면 주변장치가 조립되지 않을 뿐이고, 그러면 뇌는 그 데이터 스트림을 받지 못할 뿐입니다.
여기서 따라 나오는 결론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갖고 태어난 감각기관 세트에 반드시 그래야만 할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잡한 진화의 경로에서 물려받은 우연한 조합일 뿐입니다.
이 통찰에서 나온 것이 감각 대체(sensory substitution) 입니다. 통상적이지 않은 경로로 정보를 뇌에 밀어 넣고, 나머지는 뇌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역사는 생각보다 깁니다. 1890년대 말 폴란드의 한 안과의사는 시각장애인의 이마에 광전지 하나를 붙이고, 빛이 강할수록 귀에 큰 소리가 나게 했습니다. 해상도 1픽셀짜리 장치였습니다. 1960년대 폴란드의 다른 연구진은 시각장애인에게 청각이 워낙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해, 귀 대신 촉각을 쓰기로 했습니다. 이들이 만든 것은 진동 모터를 촘촘히 박은 헬멧이었습니다. 카메라가 잡은 영상을 격자로 나눈 뒤, 밝은 부분에 해당하는 자리의 모터를 진동시키는 방식이었습니다. 화면의 명암이 머리 표면의 진동 지도로 옮겨지는 셈입니다. 참가자들은 이 헬멧을 쓰고 방 안을 돌아다닐 수 있었지만, 장치가 너무 무겁고 뜨거워지는 게 문제였습니다.
원리 자체는 계속 증명되고 있었습니다. 눈의 광자든, 귀의 공기 압축파든, 피부의 압력이든 결국 전기 신호라는 공통 화폐로 환전되기 때문입니다. 들어오는 전기 신호가 바깥세상의 중요한 무언가를 담고 있기만 하면, 뇌는 그것을 해석하는 법을 배웁니다.
오늘날 가장 극적인 사례는 혀입니다. '브레인포트'라 불리는 이 장치는 혀 위에 전기촉각 격자를 올려두고, 카메라 영상을 미세한 자극으로 바꿔 전달합니다. 입안에서 팝핑캔디가 터지는 느낌이라고 합니다. 훈련된 시각장애인들은 이것으로 공을 바구니에 던져 넣고, 복잡한 장애물 코스를 통과합니다. 혀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글먼의 연구실은 청각에 도전했습니다. 대학원생 스콧 노빅과 함께 만든 것은 32개의 진동 모터가 달린 조끼였습니다. 각 모터가 저음에서 고음까지 서로 다른 주파수를 담당합니다. 소리를 주파수별로 분해하는 일은 원래 내이의 달팽이관이 하는 일이니, 사실상 달팽이관을 몸통으로 옮긴 셈입니다.
첫 참가자는 선천적 농인인 37세 조너선이었습니다. 하루 두 시간씩 나흘을 훈련하자, 닷새째에는 조끼로 전해지는 진동 패턴을 보고 어떤 단어인지 대부분 맞혔습니다. 결정적인 검증은 그다음이었습니다. 훈련한 적 없는 새로운 단어 집합으로 바꿨을 때도 우연 이상의 성적을 냈고, 새 집합마다 학습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답을 외운 게 아니라 듣는 법을 배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의식적인 해독이 아닙니다. 패턴은 너무 복잡해서 의식으로 풀 수 없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당신이 이 글을 소리 내어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고주파가 들어왔고 이제 저주파가 들어왔으니 이건 ㅅ 소리겠군'이라고 계산하지 않습니다. 갓 태어났을 때 당신은 귀를 쓸 줄 몰랐습니다. 뇌가 상관관계를 찾았을 뿐입니다. 엄마의 입이 움직이는 광경과 청신경을 타고 내려오는 스파이크가 함께 온다는 것, 손뼉을 치면 다른 패턴이 온다는 것. 그렇게 축적된 패턴이 철학자들이 퀄리아라 부르는 것, 즉 '듣는다'는 사적이고 직접적인 경험이 되었습니다.
조끼는 이후 아동용 소형 버전을 거쳐 손목밴드 크기까지 줄어들었고, 연구실을 나와 뉴로센서리(Neosensory)라는 회사로 독립했습니다. 초기 사용자 중 한 명인 필은 수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It makes me feel a natural connection with everyone around me... if there's some kind of noise nearby or my dog's barking or even my wife calling me from far away — I feel her call my name and I go to her." 주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 느낌이 듭니다. 근처에서 무슨 소리가 나거나, 개가 짖거나, 아내가 멀리서 부를 때도요. 그녀가 제 이름을 부르는 게 느껴지고, 그러면 저는 그리로 갑니다.
사용자들은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소리들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자레인지가 삐 소리를 낸다는 것, 자동차 깜빡이가 소리를 낸다는 것,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그렇게 크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고, 어느 아이가 말하는지, 어느 개가 짖는지 구분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용자에게 이글먼이 물었습니다. 개가 짖을 때, 손목의 진동을 느낀 뒤 '아 이건 개가 짖는 거구나' 하고 번역하시나요? 그가 답했습니다. 아니요, 그냥 저기서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려요.
미친 소리처럼 들리지만, 당신의 귀가 하는 일도 정확히 그렇습니다. 소리는 당신 머릿속에서 일어나는데, 당신은 그것이 저 바깥에서 들린다고 느낍니다.
여기까지가 잃어버린 감각을 되돌리는 이야기라면, 이글먼이 진짜 흥미로워하는 지점은 그다음입니다. 인간에게 없던 감각을 새로 붙이는 것입니다.
이미 진행 중인 응용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며 생기는 난청은 거의 언제나 고음 영역에서 먼저 시작됩니다. 그래서 나이 든 분들이 유독 여성이나 아이의 말을 알아듣기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목소리 자체가 높은 편이니까요. 이글먼 팀은 손목밴드에 기계학습을 얹어, 말소리 중 고음에 해당하는 자음(ㅅ, ㅈ, ㅂ, ㅋ 같은 소리)만 실시간으로 골라내 각기 다른 진동으로 알려주도록 했습니다. 중저음은 귀가 여전히 잘 받고 있으니, 밴드는 빠진 고음 정보만 채워주는 셈입니다. 몇 주가 지나면 뇌가 귀에서 온 신호와 피부에서 온 신호를 하나로 합쳐 듣기 시작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본인은 좋아진 걸 잘 실감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잘 들리는 상태가 워낙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반면 가족들은 금방 알아차립니다. 되묻는 횟수가 줄고, TV 소리를 덜 키우고, 대화가 매끄러워지니까요. 그래서 밴드를 깜빡하고 안 차고 나온 날에는 주변에서 한소리를 듣게 된다고 합니다.
이명에도 효과가 있었습니다. 소리와 촉각을 동기화하는 이중감각 자극이 이명을 줄인다는 선행 연구를 손목밴드로 재현한 것인데, 이글먼의 설명이 재미있습니다. 진짜 외부 소리는 손목에서 확인 도장을 받지만, 머릿속에서만 나는 이명은 아무 확인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뇌가 그것을 가짜 뉴스로 판정하고 눌러버린다는 것입니다.
내이 문제로 균형을 잃는 사람에게는 기울기 정보를, 의족을 착용한 사람에게는 다리의 각도와 압력 정보를 손목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인간이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감각의 영역입니다. 몇 가지만 구체적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주식시장을 몸으로 느끼기. 참가자는 실시간 주식시장 데이터가 변환된 진동을 5초간 받습니다. 그리고 태블릿에 뜨는 두 개의 버튼 중 하나를 누릅니다. 그는 이 진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모릅니다. 자신이 무엇을 고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1.5초 뒤에 잘 골랐는지 아닌지 피드백을 받습니다. 실제로 그는 매수와 매도를 결정하고 있는 중입니다. 연구진이 보려는 것은 하나입니다. 반복하다 보면 그가 점점 더 잘 맞히게 되는가. 그렇다면 그는 지구 경제의 흐름을 지각으로 느끼는 사람이 되는 셈입니다. 아기가 소리 패턴을 반복해서 겪으며 '듣기'를 익혔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요.
수백만 명의 기분을 피부로 느끼기. 이글먼 팀은 특정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을 인터넷에서 자동으로 수집한 뒤, 사람들이 긍정적인 단어를 쓰는지 부정적인 단어를 쓰는지 자동 분석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조끼나 손목밴드의 진동 패턴으로 흘려보냅니다. 착용자는 지금 이 순간 수백만 명이 어떤 정서 상태에 있는지를 몸으로 감지하게 됩니다. 한 사람이 원래는 결코 가질 수 없는 규모의 경험입니다. 우리는 군중 전체의 기분을 알 방법이 없으니까요.
드론과 한 몸이 되기. 드론 조종사는 보통 화면과 계기판을 눈으로 읽으며 기체를 조종합니다. 이글먼 팀은 대신 쿼드콥터의 기울기, 회전, 방위 등 아홉 가지 측정값을 조끼의 진동으로 실시간 전달했습니다. 그러자 조종 실력이 향상됐습니다. 조종사가 계기를 '읽는' 대신, 저 멀리 있는 기체의 상태를 자기 몸으로 '느끼게' 됐기 때문입니다. 이글먼의 표현대로라면 조종사의 피부가 드론까지 늘어난 셈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안개 속이나 어둠 속에서도 더 잘 날 수 있습니다.
배우자의 몸 상태를 내 피부로 느끼기. 심박수, 심박변이도, 피부 전기 반응을 재는 스마트워치의 데이터를 받아 손목밴드 진동으로 바꾸면, 평소 느낄 수 없던 자기 몸의 상태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지점은 그다음입니다. 그 시계를 벗어 배우자에게 채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당신은 상대의 생리 상태를 자기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상대가 긴장했는지, 심장이 빨라졌는지가 내 몸의 감각으로 들어옵니다. 이글먼은 이것이 결혼 생활에 좋을지 나쁠지는 자기도 모르겠다고 덧붙입니다.
이글먼은 이런 접근이 데이터를 다루는 새로운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시각은 덩어리와 가장자리와 움직임에는 뛰어나지만 한 번에 하나씩만 주목할 수 있습니다. 반면 몸은 다차원 데이터에 능합니다. 한 발로 균형을 잡을 때 온갖 근육군의 피드백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처럼요. 빅데이터에 접근하는 것과 그것을 경험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1. 당신이 확신하는 '현실'은 편집본입니다. 같은 방에 있는 개와 당신은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어느 쪽도 틀리지 않았고, 어느 쪽도 전부가 아닙니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이 곧 사실이라는 감각은, 실은 내 수용체가 허락한 범위에 대한 보고서에 가깝습니다.
2. 빠져 있는 것은 빈자리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감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냄새의 세계가 통째로 빠져 있어도, 우리는 세상을 다 보고 있다고 느낍니다. 무언가 빠졌다는 감각조차 없기 때문에, 내 인식에 무엇이 없는지는 스스로 알아차리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그래서 '내가 다 봤다'는 느낌은 생각보다 믿을 만한 근거가 못 됩니다.
3. 진입 경로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혀로 보고 피부로 듣는 일이 가능한 이유는, 뇌가 데이터의 출처에 무심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학습과 재활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꿉니다. 하나의 통로가 막혔을 때 문제는 '그 통로'지 능력 자체가 아닐 수 있습니다.
4. 지금의 몸은 최종본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감각 세트는 진화가 우연히 건네준 조합일 뿐입니다. 이글먼은 자연이 우리에게 눈과 귀 같은 완성품만 주고 끝낸 게 아니라, 어떤 정보든 꽂아주면 알아서 해석해내는 뇌를 함께 주었다고 말합니다. 새 감각이 필요할 때마다 수만 년을 기다려 진화가 만들어주기를 바랄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뇌라는 해석 장치는 이미 우리 안에 있으니, 이제 남은 일은 어떤 외부장치를 연결할지 우리가 고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우주를 어떤 방식으로 경험하고 싶습니까?
출처 Inner Cosmos with David Eagleman — 감각 대체와 움벨트에 관한 에피소드 https://www.youtube.com/watch?v=yqYjha4d40c
💡 이번 호는 AI를 활용하여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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