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발견하면 발췌해서 노트앱에 저장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렇게 발췌한 구절을 다시 보는 것은 드문 일이지만, 글을 쓸 때 예전에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떠오르면 그 내용을 찾아서 글에 인용하기를 즐깁니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제가 보기에 인용에 관한 책입니다. 다독가인 저자가 자신이 읽었던 책들에 바치는 오마주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은 작가와 인용문이 등장합니다. 책의 주된 스토리 자체가 인용구의 출처를 찾아나선다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괴테 연구의 일인자로 꼽히는 도이치 박사가 어느 날 우연히 티백에 적혀 있던 괴테의 문장을 발견하고 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문장의 출처를 찾아 나섭니다.
이동진 평론가, 오은 시인 등 많은 사람이 좋은 평을 한 책이지만 읽기 쉬운 책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한 번 읽었을 때는 내용 이해가 잘 안 되었고, 두 번 읽을 때 비로소 전체적인 그림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각주도 많은 책이고요. 하지만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내 안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더 명료한 형태로 발견하는 동시에 그 무언가를 인정받는 행위이기도 하다고 생각해 오던 차에, 이 책에서도 비슷한 대목을 발견하여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그건 아마 도이치 내면에 원래부터 존재했던 모든 것을 파악하려는 욕망이 괴테라는 선구자를 통해 비로소 존재를 인정받고, 방법을 전수받고, 최종적으로는 괴테 자체가 그 도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기도 했다. -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원래 학부 전공은 교육학이었습니다. 학부 때 학생상담의 이론과 실제라는 과목을 듣다가, 과제 때문이었는지 우연이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우울증의 인지치료라는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개념들이 너무 와닿아서 볕 잘 드는 도서관 창가에서 한참 동안 읽어 내려간 기억이 있습니다. 상황에 대한 관점은 변화 가능하며 이를 통해 감정도 변한다는 컨셉 자체가 제게는 새롭고도 충격적이었네요. 그때는 진로에 대한 고민 자체가 별로 없던 때였지만,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을 전공하는 데 알게 모르게 이 책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사후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세상을 보는 관점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열망이 제 안에 있었고 우울증의 인지치료를 쓴 아론 벡이 제 열망에 불을 지피고 방법까지 전수했다고 하면 낯간지럽고 과장된 면이 있겠지만, 일말의 진실은 담겨 있습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 아니라 하더라도, 때로는 책의 지엽적인 어떤 문장에 마음의 닻을 내리고 한참 동안 음미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런 문장이 한 사람에게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요.
남의 생각을 빌려서 자기 생각을 만드는 게 독서 - 강원국의 글쓰기
예를 들어, 책을 좋아하지만 책을 왜 읽지 새삼스레 질문하게 될 때 위 인용구를 떠올립니다. 애초에 자기만의 생각이라는 건 있을 수가 없고, 모든 생각은 인용과 재인용에 가깝습니다. 레고 블록을 쌓아 성을 만들듯이 제가 발췌를 열심히 하는 것도, 다른 더 멋진 사람의 권위 혹은 아우라에 기대어 내 말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논문이라는 게 딱 그렇습니다. 여러 학자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개연성 있게 조합한 끝에 이건 이럴 것이다 가설 세우고 가설 검증하는 것이니까요.
삶 자체가 인용과 재인용이 얽히고설킨 태피스트리 같은 것은 아닐까요. 내가 듣고 보고 읽고 맛보고 경험한 모든 것들이 나라는 책을 이룹니다. 출처는 분명한 것보다 불분명한 것이 많습니다. 이 생각은 어디서 왔을까 되짚어 보려고 시도를 안 하게 되는 것은, 그 사슬을 되짚는다는 게 대체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작중 인물인 시카리가 자신의 책 신화력의 레퍼런스 대부분을 날조했음에도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오리지널리티란 무엇인가에 대한 강한 의문을 품고 있었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원문 출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원문과 나라는 사람이 만나 어떤 울림이 있었는지가 중요합니다. 괴테가 그 문장을 정말 쓴 것이 맞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문장이 지금 내 삶의 맥락에 들어왔을 때 어떤 화학 작용이 발생하는지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명언을 좋아하면서도 그 명언의 출처가 정확한지에는 관심이 없는 이유이기도 할 겁니다.
가령 제가 아침마다 되뇌는 몇 가지 문장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계획을 세우되, 삶이 준비한 뜻밖의 일에 열린 자세를 유지한다. 가능한 한 자주 'YES'라고 말하려 노력한다."입니다. 어떤 명상가의 말이었는데 정확한 출처를 잃어버렸습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기록을 안 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 말을 매일 되뇌면서, 가능한 한 이 말이 지향하는 대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제게는 어느 문장보다 생생하고 울림이 큽니다.
설령 좋은 말은 모두 연기라 해도 그 안에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러 차례 연습하며 입에 붙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움을 획득하면 마침내 그 의미가 드러날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면, 말은 전부 미래로 던져진 기도다. -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인문주의 시대에는 명언을 말하면 그 말의 힘을 습득할 수 있다고 믿는 언령신앙이란 게 있었다고 책에 쓰여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제 마음에 제일 와닿은 지엽적인 부분입니다. 말과 문장의 힘이 생각보다 더 강력하다고 생각하는 요즘이기 때문입니다. 도이치 박사가 괴테를 전공하게 된 것도, 어린 시절 좋아하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판타지아의 원작을 괴테가 썼다는 친구의 말 때문에 파우스트를 읽게 된 것과 관련이 있고요. 다른 사람들은 어떤 부분에서 이 책과 공명했을지 궁금하고, 오리지널리티의 중요성을 낮게 평가하는 시카리가 작가의 생각을 일부 대변한다면, 저마다 다른 관점으로 이 책의 의미를 재창조하는 것을 저자가 반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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