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에는 저도 『오뒷세이아』를 읽었습니다. 500~600페이지 분량이어서 쉽진 않았으나, 이준석 역의 문장이 매끄럽고 24권 각각이 하나의 완결된 에피소드이기도 해서 생각보다 몰입이 잘되더군요.
이 책을 읽으면서 이천몇백 년 전 사람들의 마음이 우리네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오뒷세우스의 부하들이 의심과 탐욕으로 화를 자초하는 대목이 그렇습니다. 자루 안에 보물이 들었으리라 짐작하고 바람주머니를 풀어버려, 눈앞에 보이던 고향을 다시 잃는 장면 말입니다. 오뒷세우스가 공명심에 눈이 멀어 10년의 풍파를 자초하는 대목도 마찬가지고요.
호메로스는 신들 또한 인간처럼 분노하거나 연민을 품는 모습으로 그립니다. 오뒷세우스가 트로이아에서 이타케까지 얼마 걸리지 않을 거리를 두고도 10년을 헤맨 데에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진노가 있었습니다. 오뒷세우스가 퀴클롭스 폴뤼페모스의 눈을 멀게 했고, 폴뤼페모스가 포세이돈의 아들이었으니까요. 물론 그 10년이 온전히 포세이돈 탓만은 아닙니다. 그중 7년은 칼륍소의 섬에 붙잡혀 보낸 시간입니다. 반면 아테나 여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뒷세우스에게 연민을 품고 그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인간적인 감정이 이 긴 서사시를 추동하는 힘이라 할 수 있을 텐데, 그에 더해 신적인 삶이 아닌 필멸의 존재로서의 인간 삶을 택하려는 강한 의지가 오뒷세우스를 통해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가령 오뒷세우스는 그에게 반한 칼륍소 여신이 불멸의 삶을 약속하며 자신과 함께 살자고 회유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뿌리치고 죽게 마련인 인간의 삶을 택합니다. 죽은 자들이 가게 되는 하데스에서 오뒷세우스는 트로이아 전쟁의 영웅 중 하나였던 아킬레우스를 만나게 되는데, 아킬레우스는 죽은 자들의 지하세계에서 왕 노릇 하며 사느니 지상의 비천한 머슴으로 살아가는 게 낫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불멸의 신적인 삶이나 사후의 영예로운 삶보다는 현생을 중시하는 호메로스의 사상은 하데스에서 만난 오뒷세우스의 어머니 입으로도 전해집니다. 오뒷세우스는 세 번이나 어머니를 껴안으려 했지만 그때마다 혼백이 손을 빠져나가고, 어머니는 죽은 자에게 일어나는 일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목숨이 흰 뼈를 떠나면 살과 근육은 불타 없어지고 혼백은 꿈처럼 날아가 배회할 뿐이라고.
삶의 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힘들고 괴로운 나날이 지속되어도 사소한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현재는 그 자체로 선물입니다. 좌절스럽거나 수치스럽거나 커다란 화에 스스로가 집어삼켜졌던 그런 날들조차도 선물 같은 현재가 직조한 나만의 멋진 옷이 아닐까 이미지를 그려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뒷세우스도 10년의 고초를 견디고 아내와 아들과 아버지가 있는 이타케로 돌아가려 했던 것 아닐까요.
하지만 이타케에 닿기까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생사의 갈림길이 여럿 등장합니다. 신들이 자신에게 어떤 운명을 정해두었는지 인간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오뒷세우스는 온갖 시련에 맞서 꿋꿋이 견뎌냅니다. 이런 태도는 『오뒷세이아』 초반에 아들 텔레마코스의 입을 통해서도 표명됩니다.
선을 넘어버린 짓을 저지른 구혼자들에게, 작심하고 저를 겨누어 분수도 모르는 짓들을 꾸며대는 저 구혼자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는 그만한 위력을 신들께서 제게도 허락하신다면 오죽 좋겠습니까마는, 신들은 제 아버지에게도, 그리고 저에게도 그만한 복은 엮어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당장은, 그럼에도 견뎌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 오뒷세이아, 이준석 역
신들이 운명을 정해두었다 한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니, 주어진 상황을 감내하면서, 약간의 희망을 품은 채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고 책임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태도로 살아간다면 부자든 빈자든 관계없이 충분히 잘 산 것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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